잡다한 미친곳

17. 시련과 행복은 늘 붙어다닌다. 본문

소설/늑대의 보름달

17. 시련과 행복은 늘 붙어다닌다.

mady 2019. 9. 8. 20:40

그렇게 지성과 가연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의 과일가게는 핑크빛 기류와 함께 또다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서로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알아버린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런 상대와 반나절을 같이 있어야한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부끄럽고 가슴떨리는 일이었다. 가연은 낯선 느낌에 그 날 내내 지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먼저 걸지도 않았다. 지성이 골라준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나왔으면서도 말이다. 그 반대로 지성은 쌀쌀맞은 가연의 태도에 자잘한 실수와 멍을 때리며 서운한 모습을 보였다. 그 날 밤 잠든 가연을 보면서 혼자 호칭을 서로 어떻게 할지도 정하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하룻밤에 싹 달라진 그녀가 너무 서운했고 가슴아팠다.

그렇게 나온다니. 가연씨 저 진짜 상처받았어요. 아침에 인사도 땅 쳐다보고 하고! 전에는 손님맞이하는 것도 저 불러서 같이 했으면서 오늘은 거의 부르지도 않으시고! 점심때 되면 맨날 사과 주셨으면서 오늘은...아니야, 아니야. 어차피 연인사이로 발전할 것도 아닌데, 무슨 이런 생각을..그래도 그렇게 쌀쌀맞을 필요는 없잖아요 가연씨. 

 

"지성씨!"

 

"네!"

 

"어디 아프신가요?"

 

"아뇨, 아니요. 왜요? 저 오늘 이상한가요?"

 

"엄청나게요..?"

 

가연은 살짝 눈쌀을 찌푸리며 답했다. 이상하다, 매일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왜 이러지. 나만 빤히 쳐다본다던가, 손님 대하는 것도 평소보다 늘어진 모습이랄까...

 

"아, 어제 잠을 못자서 그래요. 잠을."

 

"어제 힘들었을텐데 뭐하시느라 그랬어요."

 

어제라는 단어에 지성이와 함께 했던 데이트가 갑자기 떠오른 가연은 얼굴을 조금 붉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피곤하시면 일찍 퇴근하셔도 돼요."

 

"아니에요..그러면 가연씨 힘들잖아요."

 

가연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들어온 손님을 맞으러 갔다. 

 

-

 

퇴근 시간이 되어도 지성은 끝까지 남았다. 가연이 신경 쓴 뒤로는 최대한 일에 집중했다. 그 뒤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연은 한번도 지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동안 지성은 최대한 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연을 향한 감정을 눌렀다. 한 4시간 정도를 계속 왕 앞에서 맹세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리니까 눈물이 나올것 같으며 짜증과 차가운 이성이 동시에 회오리쳤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무표정인 지성을 가연은 내심 신경쓰고 있었다. 물론 아무말도 하지 않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다 끝났어요 지성씨. 이제 가셔도 돼요."

 

"고마워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조심히 가세요."

 

로봇처럼 인사를 줄줄줄 읊는 지성에 가연은 갑자기 드는 후회와 미안함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지성씨!"

 

"네."

 

"그...제가 요즘 샴푸가 거의 다 떨어질 것 같은데요."

 

"..?"

 

"나중에..또..쇼핑 괜찮겠죠?"

 

지성은 벙쪄서 눈을 살짝 빠르게 두번 깜빡였다. 앞에서 수줍게 자신에게 물어보는 가연이 너무 미웠다. 하루 내내 쌀쌀 맞게 대하다가..! 이제 와서 이렇게 얼굴을 붉히며 물어보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게다가 매일매일 감시해서 아는 것이지만, 그녀의 샴푸는 산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됐다. 진짜 못됐으면서 사랑스러운 여자다.

 

"..제가 샴푸라면 정말 잘 알죠."

 

씨익 웃으며 그제서야 무표정을 푸는 지성을 보고 가연은 따라 베시시 웃었다.

 

"내일 뵈어요!"

 

손을 흔들다가 어둠 속으로 제빠르게 사라지는 가연에게 손을 따라 흔들다가 제빨리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는 지성이었다. 어서 그녀를 감시해야했기 때문이다. 

 

-

 

"..여봐라."

 

"예 폐하."

 

"요즘 내 약혼자에 대한 소식은 없는가."

 

"..? 사흘 전에 알려드렸던 것으로 기억하옵니다만."

 

"사흘? 어째서 매일 알려주지 않고?"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신하를 째려보는 왕이었다. 

 

"에...에..그것이, 호위무사가 보고를 사흘전에 올려서.."

 

"뭐라?"

 

신하는 마치 거북이처럼 목을 어깨 사이로 집어넣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행차해보겠다."

 

"예? 그것만은 안됩니다!"

 

"이유는?"

 

"예?"

 

"이유 말이다. 내가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아이고, 아이고 폐하 통촉하여 주십시오오~~ 아직 기강이 탄탄하게 잡히지 않았습니다아아! 아직 부실한 황궁을 주인이 비우시면 사냥개들이 몰려듭니다요. 폐하. 폐하의 약혼자가 황궁 내에서 또 눈치보는 것이 싫으시잖습니까! 폐하~ 좀 더 생각해보시옵소서어어-"

 

우는 소리를 내며 노련하게 왕을 말리는 신하였다. 왕도 신하의 말이 하나같이 맞는 말이고, 자신도 이게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만 박박 갈뿐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에 쓴 왕관은 정말 무거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까지 갈아치웠는데, 정작 매일매일 미칠 노릇으로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짜증날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그 호위무사에게 전하라. 매일매일 그녀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최대한 황궁에 대한 거부감이 없게 만드라고."

 

많이 어려운 명령이신 것 같은데.

신하는 조금 호위무사가 불쌍해졌다.

 

"모든 것은 월룬왕국 지배자의 뜻대로. 알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