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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12. 사춘기

mady 2019. 6. 4. 23:27

비공식적인 발표였지만, 그 사실이 연교 귀까지 들어가기에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모두 연교를 낯선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일하며 보모시녀 시험을 보며 출세를 꿈꾸던 평범한 궁중시녀였는데, 갑자기 왕비 후보라는 것이다. 모두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방에 박혀있던 연교에게 쿵쾅거리며 울먹거리는 여운은 소리를 빼액빼액 질러댔다.

 

"그래, 니가 전부터 도도하게 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뭘 그렇게 믿고 시크한 척 은근 꼬리를 흔들고 다니나 했더니, 왕이라는 뒷배가 또 있었단 말이지?! 그래, 잘났다! 잘났어! 어떻게 나랑 헤어지고 바로 발표가 나니? 다 니가 짠거지! 날 비참하게 만드려고 니가...니가..!!"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연교 귓가에서 울렸다. 안그래도 그녀 때문에 지금까지 쫄쫄 굶으며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화해할 생각을 했는데, 완전히 무너져 내린 관계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모든 게 미웠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나 때문이라며 우는 여운도, 갑자기 그런 발표를 내린 왕도, 날 이 궁전에 보낸 가족들도 다 미웠다. 친구 하나 겨우 사귀는가 했더니 더 큰 시련이 닥친다. 연교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내 버팀목, 태후마마는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너무 갑작스럽긴 하지만 그녀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아보려했다. 하지만 계속 해서 울리는 여운의 울음소리는 너무나 소름이 끼쳤다.

순간 연교는 고개를 파뜩 들었다. 그래. 다 놓고 도망가면 된다. 나에게는 성실함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궁전을 나와도 어디서 먹고 살수는 있을 것이다. 날 보지 않고 돈이나 명성만 보는 가족따윈 예전부터 정을 땠다. 왕이 날 찾더래도 그는 곧 날 잊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녀는 여운을 방 밖으로 밀어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도망가야한다. 이 지옥같은 장소에서 떠나 새 삶을 시작하는거다. 사랑도 찾고, 우정도 찾아볼 것이다. 어떻게든 이 장소가 아니면 된다.

그녀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녀나 집사분들 빼면 연교의 얼굴을 잘 모른다. 병사들은 그저 밖에 무언가를 사러 나가는 시녀인 줄 알고 그녀의 앞을 막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13살때부터 있던 궁전을 나왔다. 밖에 나와본지가 얼마만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녀는 도망쳤다. 

 

-

 

궁전이 온통 새 약혼자 이야기로 시끌시끌했지만, 왕 곁의 분위기 만큼은 조용했다. 왕이 오늘 날을 잡은 것이다. 

 

"태후. 나의 어머니. 그녀는 월룬 왕국의 지배자를 속이고 배반의 위험이 있으니, 이를 중죄라 판단하여....그녀를 감금시킨다. 이상. 그녀를 끌어내라."

 

"폐하!"

 

"폐하, 폐하 통촉하여 주십시오!"

 

곁 태후와 가깝게 지내던 대신들이 목소리를 높혔다. 그와 반대로 왕과 고개를 떨군 태후는 조용했다. 대신들만 목을 놓고 울다시피 태후를 불러댔다. 그렇게 진정한 왕의 시대가 왔다.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왕은 속으로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다. 저녁이 되기 까지는.

 

"속보입니다! 왕비 후보자께서 사라지셨습니다!"

태후를 감금시킨 것에 대해 올라오는 상소를 읽고 있던 왕은 종이를 툭 떨어트렸다. 물론 부정적이 반응이 나올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설마 도망을 칠 줄은 몰랐다. 심장이 쿵쾅대고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어디를, 어딜 간거야. 밖에 무슨 위험이 있을 줄 알고!

마음같아선 바로 그녀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그녀를 몰아세우면 그녀의 마음을 아예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그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면 그녀도 나와 결혼식을 올리겠지. 

 

"내 약혼자를 지킬 호위무사를 그녀 곁으로 은밀하게 보내라. 전혀 왕궁에서 보냈다는 티가 나서는 안돼. 곁에서 그녀를 감시하고 지켜라."

 

저 왕께서 약혼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다는 것이 꿈이 아니라니. 속보를 들고 왔던 병사는 속으로 놀라며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모든 것은 월룬왕국 지배자의 뜻대로."

 

그렇게 소리없이 전국 각지에서 내로라 하는 무사들이 모였다. 왕이 특별히 내린 명령이니 하나라도 허투루 하면 안됐다. 실력도 좋아야하고, 첫인상이 호감형이어야 한다. 얼굴에 흉터라도 있으면 바로 탈락이었다. 그녀 앞에서 티를 내면 안되니까 연기실력도 봤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키지 않게 정보를 주고 받아야하니 꼼꼼함도 추가되어 엄격하게 연교의 호위무사를 뽑았다. 그렇게 힘든 절차를 통과해 얼굴이 호감형이고, 여자들의 마음을 잘 눈치채며, 섬세하고 실력 좋고, 깔끔하고 품위 있고, 거짓말을 잘하는 호위무사가 뽑혔다. 왕은 은근 여성 호위무사를 원하던 눈치시던데, 어쩔 수 없지.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왕의 앞에 섰다.

 

"..나의 약혼녀를 잘 부탁하네. 그녀만 괜찮다면 너에게 막대한 보상과 지위를 약속하겠다."

 

"모든 것은 월룬왕국 지배자의 뜻이지요. 걱정 마세요."

 

시원시원하게 명을 받는 그의 이름은 구성지라는, 조금은 웃긴 이름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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