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미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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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15. 확실하지만 의심하게 되는

mady 2019. 7. 10. 22:19

왕이 한참 머릿속으로 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쯤, 가연은 지성이라는 가명을 쓰게 된 성지가 신경 쓰여 미쳐가고 있었다.

성지를 취직시키기 위해 그를 데리고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부에게 허락을 맡으러 갔는데, 그들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그럼 자네, 이름이 뭔가?"

 

"아아.. 제 이름은 지성입니다. 지성."

 

"지성..? 참 똑똑해보이는 이름이구만. 이름 값하는 친구가 맞겠지?"

 

"하하하, 당연하죠. 지성을 가진 지성입니다."

 

"푸하하! 이 친구, 개그 센스가 있어. 원 참, 하하하. 좋아. 우리 가연이랑 일하는 것을 허락하네."

 

성지를 취직시키기 위해 그를 데리고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부에게 허락을 맡으러 갔는데, 그들은 지성의 아재 개그에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마치 결혼하는 딸래미를 보는 듯한 섭섭한 얼굴과 흐뭇해보이는 웃음을 띤 그들의 얼굴은 지금 떠올려도 참 뒤죽박죽하다. 어렵지 않게 자신과 같이 일하게 된 지성은 자신을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진 않았다. 완벽하게 척척 해내면서도 가끔씩 사람냄새가 나게 실수를 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뭐라고 해야 할까. 가연의 관심을 완벽히 끌었다. 그가 손님을 완벽하게 다루고 친숙하게 불러들이는 것을 알면서도 옆에서 참견하며 그에게 말을 걸고 싶고, 그가 과일을 광내고 진열하는 데도 옆에서 계속 참견을 하고 싶었다. 차라리 일을 어려워한다면 옆에서 도와주며 그에게 멋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잘하는 거지. 

 

가연은 계속 딴 생각에 빠져 다른 날들 보다도 일에 실수가 많았다.

 

지성 다른 의미로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저렇게 신경이 간다면 대놓고 말을 걸지, 뭐하러 저렇게 은밀한 듯 행동할까. 그렇다고 일부러 눈을 마주칠 기세로 그녀를 쳐다보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고 벌래 먹은 사과를 열심히 닦는다. 첩보나 호위무사 일을 하면서 별별 일을 다했으니 못할 리가 없다. 그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의심 많은 눈초리를 받을 줄 알았는데, 그거랑은 다른 관심이라니, 조금은 난처하며 당황스럽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손님의 손에 싱싱한 과일을 들려줘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얼굴이 붉어져 썩은 사과를 먹으며 그의 눈길을 피하는 가연의 모습이 계속 재생되었다. 보호대상이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지도 처음이라 정말 그녀에 대한 정보를 캐내겠다 다짐했던 새벽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성지가 취직한 날, 과일가게에서는 계속 이상한 분위기가 돌았다. 

 

정말 성지(지성) 인생에서 제일 이상한 밤이다. 지난 날들과 다르지 않게 그 짙은 색 옷을 입고 가연의 잠든 모습을 보러 가는데, 어쩐 일인지 그녀가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거울을 보며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크고 강아지 같은 순한 눈매를 고양이 눈매처럼 찢어보기도 하고, 머리를 묶어 올려보기도 하며, 얼마 없고 싸구려 같은 화장품들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꾸며보려 하는 것이었다.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살짝씩 기울어보며 입꼬리를 올려보고, 눈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일이 있나. 성지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안 꾸며도 귀여운데, 뭐하러 저렇게 꾸미려 한담. 그렇게 실실 웃다가 그런 자신에게 깜짝 놀라 표정을 굳혔다. 그녀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고, 웃다니. 있을 수가 없다. 이럴 수가 없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이렇게 많던 적이 없었다. 실소를 터뜨리며 그는 웅크려 그녀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뒤로도 계속 거울을 보며 웃고 한숨 쉬기를 반복하다가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그녀는 잠에 들었지만 계속 그녀를 지켜보며 마음을 정리하는 성지는 최악의 밤을 보냈다.

 

"지성 씨!"

 

오늘은 기분이 좋은 건가, 아무런 생각 없이 먼저 나와 오픈 준비를 하던 지성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아... 어..., 많이... 이상한가요?"

 

이상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얼굴은 호러스러울 정도로 하얬고, 입술은 정말 치명적이게 빨겠다. 볼은 그의 앞이어서 빨간 건지, 햇빛에 빨개진 건지. 눈꺼풀은 파란색으로 뒤덮여 지성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그려진 캔버스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연 씨."

 

"네?"

 

"오늘, 가게 마감 일찍 하고 같이 어디 좀 갈래요?"

 

그렇게 거울 앞에서 고민한 결과가 이거라는 게 마음이 아프면서 귀여웠다. 자신은 왕을 섬기는 사람이니 감히 왕국의 어머니가 되실 분을 넘볼 수가 있나. 명을 받은 몸이니 명을 받들되, 선을 넘지는 말자는 것이 자신이 밤 내내 내린 고민의 끝이었다. 

 

"가연 씨 이쁜데, 그러면 못생겼잖아요. 제가 꾸미는 것도 은근히 잘하거든요?... 그러니까.."

 

지성이 뭐라 말하던 가연의 붉어진 볼은 식을 줄은 몰랐다. 눈을 껌뻑거리며 화장을 지우고 오라며 등을 떠미는 지성의 손에 밀려나 화장실에 갇혔을 때까지 가연은 자신의 심장소리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계속해서 뛰는 심장이 눈치 없는 것 같아 미우면서도 간질거려서 웃음이 계속 터졌다.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