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미친곳

13. 스토커 다음엔 더 심한 스토커 본문

소설/늑대의 보름달

13. 스토커 다음엔 더 심한 스토커

mady 2019. 6. 7. 22:21

구성지가 연교를 찾아 왕궁을 떠나고 일주일 뒤, 무작정 왕궁을 나와 일자리를 찾던 연교는 맘씨 좋은 부부를 만나 한 작은 과일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연아! 사과 다 닦았냐~"

 

"당연하죠! 배는 저기에다가 뒀어요. 이제 가게 문만 여시면 될 것 같아요!"

 

해맑게 소리치는 소녀는 가연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었고, 죽을 것 같던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구성지는 저 여자가 왕의 약혼녀 연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왕이 구성지에게 말해줬던 연교의 자연스러운 습관이 그녀에게서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난처해졌을 때에는 눈을 두 번 깜빡인다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입을 굳게 다물거나 입술을 깨문다는 것 등등 왕의 스토커 기질이 그녀를 기어코 찾아내게 된 것이다. 이제 자연스레 다가가서 그녀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지키는 일만 남았다. 찾았다고 보고를 하러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려는데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뭐야, 어떻게..? 어떻게 여기를 딱 본거지?

 

"거기 잘생긴 오빠~"

 

해맑고 능청스럽게 그를 부르는 연ㄱ...아니 가연이었다. 

 

"와서 사과 하나만 물어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구성지가 일을 할 때에는 복면을 쓰거나 어둠 속에서 일했으니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일한 적이 없었다. 조금 재수 없는 이유지만, 그의 미모에 지나가는 여자들이 멈춰 꺄꺄거렸고, 가연은 그걸 보고 저 남자를 잠깐 홍보에 이용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만 복잡한 생각을 하며 가연이 준 사과를 깨물었다. 옆에 있던 여자들이 잠시 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과는 생각보다 달았다. 토끼눈을 하며,

 

"이거 맛있네요?"

 

라며 가연이 원하는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렇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여자들 무리에게 손짓을 하며, 사과나 배 사시는 게 어떻냐 묻는 가연을 구성지는 옆눈으로 보았다. 이렇게 친해지는 것이 나중에 더 도움이 되겠지.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인가요?"

 

"어머, 그렇죠. 일한지 일주일밖에 안되어서 모르는 안면들이 훨씬 더 많아요. 혹시 손님도 여기 사시는 건가요?"

 

"아아, 아니요. 전 어머니가 위급하시다고 하셔서 잠시 온 것뿐입니다."

 

"앗..신녀의 가호가 내리시길. 어머니가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이 가게에도 신녀의 축복이 내리길."

 

훈훈한 덕담이 오갔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가연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결국 과일을 사야만 했다. 그녀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던 구성지는 흐늘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임시 아지트로 들어갔다. 웃기는 아가씨였어. 왕궁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렇게 한치 의심도 안 하고 왕궁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굴다니.  

계속 가연의 웃음이 떠올라 구성지는 푸흡, 웃었다. 불쌍한 아가씨. 왜 도망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신녀가 될 운명이랍니다. 이 월룬 왕국과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월룬 왕국의 지배자를 위해서라도요.

구성지는 손거울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거울 안에서 돌더니 파란 안개가 거울을 휘감았다. 구성지는 미리 써둔 보고서를 거울에 비추었고, 안개의 푸른빛은 초록빛으로 서서히 바뀌더니 훅 꺼져버렸다. 다시 평범한 거울로 돌아온 손거울을 자신의 가방 안에 소중히 넣고 옷을 어둡게 입었다. 복면까지 쓴 그는 가방을 들쳐 매고 어두운 길가로 나갔다. 농촌이라 그런 건지 밖은 캄캄했고, 구성지는 골목으로 쏙 들어가더니 능숙하게 건물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가연이 묵고 있는 건물 주위를 꼼꼼히 둘러본 다음, 하늘에 크게 걸린 달을 등지고 가연이 잠든 방 창문을 보며 보호 동시에 감시를 한다. 그렇게 구성지는 닭이 홰를 칠 때까지 가연의 잠든 모습을 보았다.

'소설 > 늑대의 보름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확실하지만 의심하게 되는  (0) 2019.07.10
14. 천천히 퍼지는 다른 색  (0) 2019.06.22
12. 사춘기  (0) 2019.06.04
11. 변화라는 이름의 폭력  (0) 2019.06.03
10. 망치는 누구였을까  (0) 2019.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