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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14. 천천히 퍼지는 다른 색

mady 2019. 6. 22. 09:32

해가 뜨고 수탉이 목을 한껏 뽑으며 운다. 바로 밑이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 밑이라 닭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얼굴을 찌푸리며 부스스 일어나니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바로 비춘다. 얼굴에서부터 퍼지는 따뜻함에 무언가 베시시 퍼지더니 이윽고 그녀에게서 힘찬 목소리를 끌어모으게 한다. 

 

"아자!"

 

그녀의 기합소리에 병아리들이 놀라 엄마닭 옆으로 모여든다. 

 

-

 

"자, 아침으로 사과 어떨까요~! 미용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사과~!!"

 

오늘도 열심히 과일을 파는 가연이었다. 그녀의 호쾌함에 몇몇 손님이 몰려들고, 구성지도 거기 슬쩍 끼어 그녀 주변의 활기를 즐겼다. 그렇게 한참 그녀 곁을 빙빙 겉돌며 과일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노래하듯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또 오셨네요~"

 

"앗, 알아보시네요."

 

못 알아볼리가요. 그렇게 눈에 잘 띄는 얼굴을 하고서. 입에서 맴도는 말을 삼킨 가연이었다. 사실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갑자기 소녀들의 눈빛이 변하고 슬금슬금 그 주변으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눈에 정말 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이 얼굴로 꽤 많은 매출을 냈기 때문에 된다면 그를 과수원 부부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다.

 

"저기,..혹시 여기에 취직해보시지 않으실래요?"

 

성지는 깜짝 놀랐다.

 

"네? 갑자기요?"

 

"아...그, 과일 잘 파실 것 같아서...그리고 여자 혼자 가게 보는 게 꽤 힘들거든요. 싱싱한 과일도 날마다 먹을 수 있고, 음, 주는 돈도 은근 괜찮고.."

 

횡설수설하는 가연을 보며 성지는 가연 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녀 옆에서 딱 달라붙어 있으면 오히려 자신의 미션에 도움이 되니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좋은데요. 제가 과일을 좋아하거든요."

 

털털하게 웃어보이는 성지의 웃음을 보니 가연의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겠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가연은 활짝 웃으며 성지의 웃음에 답했다. 예쁘게 휘어진 그의 눈꼬리는 지금까지 남자에 관심도 없던 가연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

 

그 무렵, 왕궁의 분위기는 전혀 좋지 않았다. 황후가 물러나고, 물갈이가 시작되며 많은 사람들이 왕궁에서 나섰다. 제빨리 왕 쪽으로 붙은 사람도 있었고, 황후를 끝까지 따르다 어떤 한 섬에 유배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 흉흉한 분위기에서 소문이란 녀석은 더욱 날뛰었다. 왕의 약혼자가 다른 나라로 갔다는 사람도 있고, 왕이 약혼녀를 가뒀다는 사람도 있었다. 거의 다 왕을 까내리기 위한 소문이었고, 그 소문의 주인인 왕은 그저 태연했다. 

 

"왕이시여."

 

"그래."

 

"요즘 입에 담지도 못할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흐음."

 

왕은 상소문을 펄럭거리며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느릿하게 웃었다.

 

"이대로 가다간 겨우 잡은 입지를 잃을까 염려되옵니다. 소문의 싹을 왜 뽑지 않으시는지요."

 

"상관할 가치도 없으니 그렇다. 어차피 내 약혼녀가 어디 있는지 알았고, 음, 그래. 그녀를 위한 분위기 조정은 좀 필요하겠지."

 

분위기 조정이라? 약혼녀가 전 시녀여서 그런건가? 

고개만 갸웃거리는 대신을 상소문 너머로 보며 왕은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겨우 우리에서 구멍을 찾아 나온 토끼같은 여자다. 거기서 다시 오라고 당근을 흔들어봤자 겁 잔뜩 먹은 토끼가 올까? 전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히 그녀의 겁을 풀어줘야한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는 거지. 그럼 그녀도 내 마음을 받아줄거야.

그녀와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그런 왕의 상태도 모르고 신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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