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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11. 변화라는 이름의 폭력

mady 2019. 6. 3. 20:18

태후의 조카딸의 이름은 베오였다. 그녀는 참 사랑스러운 웃음을 잘 짓는 여자였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꽃으로 몸을 치장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교에게 온통 마음을 뺏긴 왕은 그녀의 눈을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당황한 베오였지만, 왕궁에서 살았던 그녀는 태후의 조카딸답게 만만치 않았다. 

 

"전하! 이 스테이크, 참 맛있어요!"

 

"그렇군요."

 

"전하! 이 꽃, 참 에쁘지 않나요?"

 

"그렇군요."

 

"전하! 제가 전하를 참으로 사모하는데, 저를 신녀로 만들어 드릴 수 있나요?"

 

"..."

 

그저 그런 겉치례 식의 말을 그만 두고 갑자기 본심을 나타내는 그녀의 물음에 그제서야 그녀의 눈을 보니, 그녀의 눈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움을 뽐내던 눈은 사라지고 없었다. 

 

"원하는 것이 그것뿐이오?"

 

"하, 당연하죠. 나를 이렇게나 거들떠 보는 남편따위 같이 있고 싶지도 않아요."

 

자칫하면 목이 댕강 날아갈 수도 있는 말을 거침없이 왕 면전 앞에서 뱉어내는 그녀였다. 왕은 그런 멍청한 그녀가 신기해서 가만히 비웃음을 짓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베오는 멈칫하더니, 헛기침을 하며 뒤를 돌았다. 부채로 가린 그녀의 귀가 빨갰다.

 

"태후마마께 다 이를겁니다. 전하.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시는 것이 나았을 것인데.."

 

왕은 그저 삐딱하게 그 잘생긴 얼굴로 비웃을 뿐이었다. 참 불쌍한 여자로구나. 차라리 연교가 저 여자의 성격을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텐데. 살짝 어른하게 비춰지는 달을 보며 왕은 연교를 떠올리며 다시 웃었다. 참 행복한 웃음이었다. 

 

-

 

다시 왕은 왕궁으로 돌아와서, 신녀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알아낸 것은 신녀는 확실히 있다는 것. 전설로 내려오는 상징같은 것이 아니다.

신녀라는 것은 왕비를 뜻하기도 했다. 신녀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자의를 가진 것이 아닌 물려받는 힘같은 것이었다. 그 힘을 서술할 단어를 마땅히 찾지 못해 신녀라고 부르는 것 뿐이었다. 신녀라는 것이 힘이다 보니, 그 주인은 신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월룬 왕국의 지배자 밑에 있으니, 왕비가 왕의 이름을 알지 않는 이상 왕의 명령만을 따라야한다. 

만약 왕비가 왕의 이름을 왕의 입으로 알게 되면, 더 이상 그녀는 왕의 밑이 아니다. 신녀라는 힘으로 여왕이 될 수도 있어 지금까지 왕비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주는 왕은 없었다. 

 

왕은 태후에게로 갔다.

 

-

 

태후는 초조해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잡은 그 자리가 잘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오는 멍청한 구석이 있어 그 여우같은 왕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참 예쁜 웃음이 있고, 왕은 특별히 좋아하는 여자가 없으니 나쁘지 않은 싸움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렁찬 대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나라 주인께서 납십니다~!!!"

 

깜짝스러운 등장에 태후는 후다닥 당황한 목소리로 맞았다.

 

"이 나라 주인을 뵙습니다."

 

혹시 베오가 맘에 든 걸까? 속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왕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신녀는 어딨습니까."

 

"예? 갑자기요?"

 

"신녀, 어디다 두셨습니까. 모든 것의 내 지배하에 있을 터인데, 신녀라는 것은 제 명령을 듣지도 않더군요."

 

"폐..폐하! 잠시, 오해입니다!"

 

"당신이 어디에 숨긴 것이겠지요. 어디다 두신 겁니까. 저에게 하나 상의도 없이!"

"페하! 당신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선대는 내가 신녀의 힘을 쓰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대까지 들먹였다. 태후는 눈 깜짝도 하지 않고 두려워 하는 기운 없이 왕에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태후. 거짓말은 멈춰주시지요. 전 신녀가 있는 곳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관자놀이를 짚으며 왕은 태후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매에서 수정을 하나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파란 안개가 수정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들어다보다가, 고개를 숙인 태후를 보다가 수정을 아무런 고민 없이 깨부숴버렸다. 파란 안개가 태후의 방을 가득 매우더니 사람의 형상이 되어 왕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것이 신녀인가."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나의 약혼자를 발표하겠다."

 

모두 놀라 왕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연교. 이 왕궁의 보모시녀가 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그녀를 내 반려자로 삼고, 신녀의 주인이 되게 하겠다."

 

태후는 입을 딱 벌리다가 풀썩 주저 앉아버렸다. 

왕궁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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