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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미친곳
6. 우리 할머니 본문
그렇게 지옥 같은 이틀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내 옷 밑 살들은 손톱자국으로 딱지가 져서 가려웠고,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과 피부는 뽀얗게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산삼이 가득 들어간 것들과 내가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최고급 뭐뭐뭐입니다. 최고급 뭐뭐입니다. 최고급... 최고급.. 이제는 그냥 좋은 거니까 입 닫고 먹으라는 것 같지만. 이틀 동안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나는 여기에 대한 정보를 몇 개 추려낼 수 있었다.
우선, 여기는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다. 내가 기절했을 때 어디로 끌고 온 건지, 여기가 그 산 속인 지, 그건 자세히 모르겠지만.. 여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동물처럼 보이면서 사람 모습을 한 시녀...? 같은 것들과. 이상한 말투를 쓰는 이상한 나무 같은 피부를 한 아저씨들. 그리고...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장승같은 그 경비원들. 눈알이 데굴데굴 시도 때도 없이 구르는데, 그들은 어쩐지 시야가 넓은 것 같았다. 멀리 있었는데 탈출하려는 나를 봤으니까. 생각보다 대단한 눈인 것 같다.
'쾅!'
아이고, 문짝 부러지겠다. 어차피 내꺼가 아니라서 상관은 없나.
"전하 오신다니까 준비해!"
앙칼맞은 기집애가 고양이 같은 눈을 더욱 찢자 무서울 정도였다. 내가 준비할게 뭐가 있다고. 너네가 준비해야겠지.
"전하가 여길 왜 오는데."
"시이발, 묻지 마! 짜증 나 미칠 것 같으니까!"
내 손을 확 당겨 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고 내 옷을 훌훌 벗겼다. 수치심에 쫘악 귀까지 벌게졌지만 그녀에게 지나친 반응은 딱 좋은 괴롭힘의 시작종 같은 거였으니.
"문 제대로 안 닫았는데."
"볼게 뭐 있다고."
풉, 내 말에 비웃는 그년의 귀를 쫙 찢어주고 싶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날 미워하는지 귀동냥으로 알아보니, 이 나라의 배반자를 드디어 전하가 잡아오셨다고 했다. 내가 배반자라니, 처음엔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그 배반자란 건 우리 할머니인 것 같다. 계약을 한건 할머니니까, 아마 이 나라가 알고 있는 사람도 할머니겠지. 미워할 사람 잘못짚었다고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으니....
"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옷이 구겨질까 봐 나를 건들지도 못하고 말로만 궁시렁거리며 내 머리와 화장을 해주었다. 전하라 한다면 그놈 보러 가는 것 같은데, 뭐하러 이렇게 꾸민담.
"하기 싫으면 하지 말던가, 입을 닫던가."
내가 툭 뭐라고 핀잔을 주자 그 년은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껠껠껠. 꼬시다.
-
다시 그 큰 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내가 꾸미고 나타나자 새삼 놀라운 반응이 나에겐 짜증 나기만 했다. 그때 꼬질꼬질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격렬할 필요는 없잖아.
"그때에는 무슨 미친년 같더니.."
"역시 여자는 꾸며야 꽃이라니까요?"
"푸풉, 가시가 꾸며보았자 꽃이 될 수는 없잖습니까~"
짜증 나는 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가만히 병신같이 웃고 있으라는 그 고양이년 말을 들었어도 미간에 주름이 팍팍 지어졌다. 확 소리라도 지를까 고민하던 참에, 갑자기 조용해지고 그놈이 나타났다. 번쩍번쩍하게 꾸민 그에게 홀에 있던 전원이 넙죽 절을 하는 것을 보니 그에게서는 지금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신분 차이랄까, 위압감이랄까. 너는 나에게 한~~~ 참이나 뒤떨어지는 여자야. 풋. 하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느낌? 나도 고개를 숙여야 하나 분위기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던 도중,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보는데, 부끄러우면서 저 놈의 뺨을 치고 싶은 본능이 피어났다. 뭘 저렇게 보는 거야.
그가 털썩 왕좌에 앉자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신나게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 배반자라고 낙인이 찍힌 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치는 어깨빵을 가만히 맞아주며 구석에 박혀있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한 10분이 지났나,
갑자기 한 장승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전하가 부르십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왕좌 앞으로 갔다. 모두 날 안 보는 척하고 있지만 나를 신경 쓰는 것이 느껴졌다. 저 배반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거겠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계약했던 임연교의 손녀딸, 한아름은 들어라!"
그 뒤로 들리는 작은 수군거림. 뭐야, 계약자가 아니었어?
"너의 할머니, 임연교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계약을 맺고, 우리나라는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너의 할머니는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하지 않고 다른 세계로 떠나버렸지."
역시 여기는 다른 세계였구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희 아버지의 대를 넘어서 아직까지도 너희 가문을 기다리고 있다!"
"잠깐만!"
내가 말을 끊자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놈의 눈길이 매서웠다.
"하...ㄹ... 드릴 말... 씀이.. 있어요! 저와 저의 아버지는 계약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할머니가 지금까지 저희에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가신 건데, 저희도 억울한 점이 있다는 것을....알..아..주시..면.."
내가 말을 이어갈 때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한아름."
"넨ㄴ네??"
"그대 할머니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아는가."
"아니요..?"
"그대 할머니는 이 나라의 왕조이셨다. 그리고 태평성대를 이루던 이 나라를 파국에 들뻔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
"..?????"
"그래. 그 여자를 우리나라가 어찌 잊겠는가."
임연교...지금은 가문과 역사에서 지워진 여자지만, 그녀가 살아있을 때에는 우리나라를 돌봐주는 신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녀였다. 그녀 덕분에 가뭄이나 홍수.. 태풍. 그런 천제 지변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늘 넘쳐나는 풍요로움으로 나라는 행복에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었지. 나라는 신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아프면 온갖 약재와 선물이 성 앞에 넘쳐났고, 그녀가 산책을 나가려면 온 국민이 쓰레기를 줍고 자신들의 땅을 가꿨지. 신과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 그것이 너의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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