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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4. 또 다시 기절

mady 2019. 5. 6. 23:46

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잠깐 정신이 들었는데, 내가 무력하게 누워있는 동안 여러 명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멍한 정신은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 스스로 숨어들었다.

머리 아파. 아빠 보고 싶다.

 

다시 한번 더 정신을 차렸을 땐 눈꺼풀을 들 수 있었다. 습한 동굴같이 생긴 숲 속. 보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나뭇잎들. 이제 산 같은 것들 좋아하나 봐라. 이제 할머니도 다 싫다.

고통이 흐를 것을 감수하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심한 고통에 엌, 비명을 작게 질렀다. 머리도 욱신거리고, 발목도 심하게 삔 것 같다. 고통만으로는 가시덤불에서 구른 것 같다. 

 

"그 시발놈."

 

으르렁거리며 내 팔다리를 둘러보았다. 성한 곳이 없었다. 도대체 왜 나를 산에서 민 걸까. 왜 그놈은 여기 있고 그 마지막 왕자병 들린 듯한 싹수없는 말투는 정말 그 녀석이 한 걸까. 화보다는 당황이었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어떻게 그런 사이코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생각하는 척하면서 속으로 그 녀석을 잘근잘근 씹던 도중에, 내 머리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이끼 같은... 약초를 짓이겨 올려놓은 것 같았다. 누군가 돌봐준 건가, 생각하던 도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아악!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파닥거리며 그 약초를 땅에 떨어뜨리자 다시 한번 그 여자아이는 괴성을 질렀다. 

 

"아아아!!!!힘들게!!!구해온건데에에!!"

 

왜 어제부터 나 자주 놀라는 것 같지.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가. 몸도 안 좋은 상태인데 바로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 년이 너무 꼴 뵈기 싫어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팍 굳혔다. 제발 시끄러. 하는 내 아우라를 느꼈는지 그 아이는 입을 딱 다물고 입을 삐죽 내밀며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돌봐준 사람에게 아주 좋은 표정이네요."

 

생색을 팍팍 내며 그 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내 머리에 그 이상한 약초를 다시 붙여주었다. 알싸한 풀냄새가 싫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내 머리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건 전혀 달가운 기분이 아니었다. 

 

"...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119 먼저 부르는 게 정상 아니야?"

 

너 내가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니가 직접 치료를 해. 이상하게 생겨서. 라는 가시 돋친 뜻을 잘 감싸 안은 말을 툭 던졌다. 그 아이는 그 속뜻을 모르는지 아는지 헹, 콧방귀를 뀌며 톡톡 약초를 내 상처 곳곳에 발랐다. 

 

"걱정마요 걱정 마! 내가 약초 하나는 빠~삭 하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우리 애기 나가지도 못할 거잖아요."

 

우리 애기라는 호칭에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우선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 우리 애기?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주인님이 그러시던데? 우리 애기라고...아닌가? 그리고 이 산에 쫙 퍼졌어요~!"

 

"주인니이임??"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증가하는 물음표에 입만 떡 벌렸다. 그리고 여기 산에 누가 사나? 뭐가 쫙 퍼져?

 

"잠깐만...주인이 누구야...?"

 

"아시는 줄 알았는디, 아까 애기 민 분이 우리 주인님이시다요!"

 

그걸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녀의 뻔뻔함에 점점 더 입만 벌어져가는 나를 보고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애기 호칭이 맘에 안 드나?"

 

"이 시발...."

 

킥킥 웃는 그 두꺼운 낯짝은 내 모습을 기분 나쁘게 천천히 훑어보다가 다시 풉, 풉 웃었다.

차라리 푸하하!! 웃지 그래? 진짜 미칠 것 같다. 한 대 때리고 싶은데 몸이 떨린다. 기절하기 전 싸늘한 눈빛과 비틀린 냉소,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런 표정을 했어? 언제?라고 말할 듯한 천진난만한 미소에 너무 소름이 돋았다. 

 

"니가...산주인이라며?"

 

"호오,"

 

곧바로 내 옆에 조금 떨어져 있던 여자아이에게 향하는 무심한 시선. 여자아이는 눈동자를 데록 굴리며 나무 사이로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맞기는 맞아. 산주인. 어디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참."

 

맞다는 말에 후다닥 입을 여는 내 입술을 오리 입술처럼 잡더니,

 

"말 안 해도 알 것 같은데, 우선 오늘은 쉬어."

 

"븝!!!"

 

"어허 애기야."

 

나긋나긋하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준수한 외모가 나에게는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아니라, 두려움의 가슴 뜀박질을 치게 만들었다. 무서워. 또 이대로 밀어버리면 어쩌지. 이 사이코가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되지를 않는다. 

 

"아... 너 근데 아까 보니까 그 약초한테 반말 잘도 하더라? 예의가 없는 년인가?"

 

"...?"

 

내가 모르는 새에 약초 보면서 혼잣말이라도 했나?

 

"역시 모르는구나."

 

쿡쿡 웃다가 내 입술을 놔주고 그는 웃었다. 보기엔 이 멍청한 년아, 하는 듯한 깔보는 미소였지만.

 

"그거, 100년 넘게 묵은 산삼이야."

 

"어..?"

 

점점 입이 다시 벌어진다. 그러다가 냉정한 척, 설마, 이 녀석이 놀리는 거겠지. 하고 눈을 껌뻑여 제정신을 찾았다. 

 

"거짓말."

 

용기인가 아니면 미소에 이상한 확신을 얻은 미친 짓인가 모를 정신으로 그에게 거짓말 치지 마,라고 대들었을 때, 그는 손 짓을 나무 뒤에다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애기야..."

 

낯익은 목소리가 부스럭부스럭 나오자 나는 뒤로 넘어갈 듯 숨을 들이쉬었다. 

거기엔 흙이 덕지덕지 낀,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산삼이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줄기 부분이 쑥 아까의 여자아이 얼굴로 변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대로 까무러쳤다.

 

"쯧."

 

혀 차지 마 망할 놈아,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하고 하나하나가 나에겐 충격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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