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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늑대의 보름달

2. 계약이 뭐라고

mady 2019. 5. 2. 00:00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상태로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자니, 이성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먼저 괴롭힌 건 그쪽이잖아.. 내가 뺨 때린 건 정당한 행동이었고, 그 사람이 먼저 괴롭힌 거야. 하지만...하지만... 먼저 때린 건 오히려 내 쪽인데... 설마... 고소당하거나. 그 시키가 아빠에게 가서 따님이 제 뺨을 때리셨습니다.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셨습니까! 이러거나..그럼 아빠는 용돈을 안 주고 친구들이랑도 못 놀게 하겠지? 진짜 인생 최대 흑역사인 것 같아... 짜증 나!...짜증나!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해??

무릎에 얼굴을 묻자 뭔지 모를 감정에 눈물이 다시 나올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면 재빠르게 닦으려고 눈을 비비는 척 손을 눈에 가져갔다.

 

한아름!!”

 

우렁차게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간 채 벌떡 일어나자 아빠가 굳은 얼굴로 무섭게 내 쪽을 걸어오시고 계셨다.

 

따라와.”

 

? 잠깐만...”

 

따라와라.”

 

이런 굳은 목소리와 얼굴로 명령조인 말을 하는 아빠는 처음이었다. 눈만 빨개진 나는 그대로 손목을 잡혀 집 뒤편으로 끌려갔다. 끌려가는 그 스무 발자국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머리를 채우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놈이 경찰을 부른 거야.. 그래서 경찰이 집 뒤편에서 무서운 얼굴로 수첩을 들고 나를 쳐다볼 거야!!!!

 

아빠! 아빠 잠깐, 잠깐만!”

 

바둥거리며 아빠의 손에서 풀려나 아픈 손목을 쥐어 잡고 눈물이 그렁해져서 빨간 얼굴로 아빠에게 내 말 좀 들어 달라 외칠 생각이었는데, 아빠가 오히려 울 듯이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외치려고 큰 숨을 들이쉬었던 내 허파는 바로 꺼져버리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 충격을 받았다.

 

“미안하다...아름아...아름아...한아름...우리 딸..”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손을 잡고 무릎을 꿇는 아빠를 난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 나 뭔가.. 경찰보다도.. 큰 문제가 생겼구나. 를 눈치챌 수 있었다.

 

-

 

정말 그거면 되는 거니?”?”

 

"돈가스가 어때서요."

 

큰 고모는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내가 한가득 무는 돈가스를 보았다. 나는 그저 헤 웃어 보이며 돈가스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아빠가 말씀하시기를, 할머니의 유서를 찾았고, 할머니는 산주인이라는 분과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계약의 대가를 미루다가 오늘날에 돌아가신 거고, 만약 계약을 우리들이 못 지킬 경우엔 엄청난 벌금이 우리 가족들을 파산으로 몰고 갈 것이니 나 혼자서 저 산에 사는 산주인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우리는 그 계약과 관련이 전혀 없으니 계약을 파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왜 내가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더니, 할머니의 유서에 무엇을 얻는 대신 산주인에게 자신의 딸을 주는 것이 계약인데, 그 딸이 돌아가신 내 막내 고모였다. 하지만 막내 고모는 자살로 세상을 떠나셨고, 대신 집안 유일하게 미혼인 여자가 나여서 내가 막내 고모 대신 바쳐지거나 아니면 이 천문학적인 벌금을 떠맡거나였던 것이다. 계약에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우리는 절대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차선책으로라도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아빠가 힘들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문제의 중심인 할머니를 부르는 곡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옆에 서있는 큰아버지는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 계셨다. 계약의 대상은 아예 할머니의 가족들로 되어 있으니 이 빚을 자신도 갚아야 한다는 것이 겁이 나신 걸 거다.. 가만히 듣고 계신 큰고모가 특유 날카로운 목소리로 작지만 또박또박하게,

 

문제는 아름이가 가도 그 산주인이란 작자가 맘에 들어하느냐지.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막내였다며. 아름이가 갈 필요가 있어?”

 

아하. 내가 바쳐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문제군요. 역시 큰고모야.

그러자 큰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그럼 저 빚을 다 갚을 거야?? 우리 전재산으로도 모잘라.”

 

그렇게 조카를 얕게나마 걱정한 고모는 입을 닫았다.

 

가면 되죠.”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분위기는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내 곧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표정이 그들 얼굴에 자리 잡았다.

 

“아름아... 우리 딸이 왜..."

 

아빠만이 눈물을 떨어뜨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도 않았고, 아빠 속 엄청 썩이고.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네. 딱이다 딱.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산주인이라는 사람... 의외로... 소설처럼 막 근육질이고 얼굴 잘생기거나.. 돈이.. 많겠지. 산 주인이니까.

 

-

 

아까의 일을 다시 떠올리며 소스로 눅눅해진 돈가스를 목구멍으로 겨우 넘기며 훌쩍댔다. 이런 돈가스는 친구들이랑 먹어야 제 맛인데 말이야. 오늘 급식... 맛있는... 건데.

산을 쳐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가야 한다던 저 산... 옛날...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산이네. 내가 특히 무서워하던 산. 뭔가 운명적인 게 있는 건가..엄마 보고 싶다. 

 

초승달이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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