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미친곳

(미정) 1화 (전에 썼던 소설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림) 본문

소설/(미정이라고 쓰고 1화만 쓰는 소설들)

(미정) 1화 (전에 썼던 소설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림)

mady 2022. 2. 16. 22:50

루틴은 16살 여자아이 입니다. 15살 이상 아이들은 모두 고아원을 위해 바깥에서 일을 해야합니다. 가끔 자신의 재능을 찾아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적성공부라는 것을 하지만, 루틴은 볼 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합니다. 오늘은 돌을 캐는 일입니다. 남자아이만으로는 부족한걸까, 루틴같이 키가 조금 큰 여자아이들은 모두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이봐! 멍청한 자식 같으니, 뭘 멍때리고 있어!"

 

회초리를 촥 허공에 휘두르며 보초가 윽박을 지릅니다. 루틴은 조금 움츠린 듯하더니, 어기적어기적 다시 돌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들만 골라서 말이죠. 무거운 것들은 모두 남자아이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말 없이 땀만 흘리며 묵묵히 무거운 돌들만 골라서 나릅니다. 여자아이들은 그런 남자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자잘한 돌과 모래들만 날랐습니다. 루틴은 그런 남자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들의 옷이 땀에 젖어 잔근육이 힐끗힐끗 보일 때는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고 싶어집니다. 그 작은 오아시스 하나만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루틴은 그런 여자아이입니다. 

 

다음 날에도 이 광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도 꽤 지쳐서 마치 로봇같은 얼굴로 손발만 움직입니다. 루틴도 꽤 지쳐서 남자아이들의 근육은 보지도 않고 속으로 욕만 지르고 있습니다. 돌들 위로 땀이 뚝뚝 떨어지다가 빨갛고 찐득한 것이 떨어집니다. 코피입니다. 루틴은 깜짝 놀라 보초를 쳐다봅니다 .보초는 아무런 반응없이 루틴을 쳐다보다가 그냥 저 동굴로 들어가 쉬라합니다. 물이나 빵같은 것은 없습니다. 괜찮냐는 말도 하나 없습니다. 하지만 루틴은 그저 좋아하며 동굴 그늘로 들어가 쓰러지다시피 누웠습니다. 그렇게 자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팔을 툭툭 건듭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눈을 뜨자 까맣고 똥그란 눈을 가진, 루틴 종아리만한 무언가가 이를 드러냅니다. 그것도 깜짝 놀랐는지 루틴의 얼굴을 발톱으로 할퀴려고 합니다. 뒤로 마구 물러난 루틴은 저게 뭔가, 생각을 하다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그것에 겁을 잔뜩 먹고 돌로 내리칩니다. 한방에 머리를 맞은 그것은 마구 꿈틀거립니다. 비명하나 지르지도 못하고 머리뼈가 으깨져 죽은 것을 요리조리 둘러보다 사람 아기라는 것에 루틴은 충격을 먹습니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과, 자신이 사람을 죽인것에 믿을 수 없어합니다. 하지만 이내 가라앉는 충격과 공포는 루틴을 짜증나게 합니다. 어차피 먼저 공격한건 저쪽이라고 루틴은 합리화해버리고 시체를 동굴 깊숙이 넣어버립니다. 이젠 코피를 흘려도 이 동굴엔 오지 않겠다 생각합니다. 재수없다며 루틴은 땅을 찹니다. 

 

광산에서 코피를 흘렸던게 고아원에선 꽤 미안하게 생각했는지 그 뒤로 루틴은 바느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울끈불끈한 근육을 못본다는게 아쉽긴하지만, 그 동굴만 생각하면 다행입니다. 바느질은 꽤 좋은 일입니다. 점심식사를 여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과 일을 빨리 끝내면 먼저 쉬러 갈수 있다는 것이죠. 루틴은 쉬는 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여기저기 쏘아다닙니다. 하지만 이곳 고아원에서는 어서 빨리 재능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고아원의 지원을 받으며 졸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인이 되어서도 재능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론가로 사라집니다. 다른아이들은 이것저것 하며 자신의 재능을 찾기위한 노력을 하지만 루틴은 그런것에 관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매일매일 넘쳐나는 시간으로 따분해하는 루틴.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안녕."

 

"...?"

 

자신의 눈을 보고 인사까지 했는데도 루틴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을 돌립니다. 늘 혼자 생활했던 루틴에게 누군가가 말을 거는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인..인사 안해줄거야?"

 

루틴이 그제서야 남자아이를 제대로 쳐다봅니다.

 

"미안. 인사받는 건 오랜만이여서. 음..안녕."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인사하는 루틴에게 남자아이는 씩 웃어보입니다. 그는 참 깡마른 몸에 여우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자같은 호리호리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대 루틴의 취향이 아닙니다. 게이같다고 생각한 루틴에게 해맑게 웃는 남자아이의 이름은 서진이었습니다. 

그 뒤로 서진은 루틴을 틈만 나면 찾아왔습니다. 루틴은 그런 서진이 귀찮았지만 싫지는 않아 그냥 놔뒀습니다. 그렇게 서진은 루틴에게 하나하나 다가왔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딱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아마 없는 것 같아."

 

"음..난 으깬 감자 좋아해."

 

"그런걸 좋아해?"

 

"왜? 고소하잖아. 그럼 싫어하는 음식은 뭐야?"

 

"그것도 없을 걸?"

 

"난 알겠던데. 으깬 감자 싫어하는 거 아니야?"

 

-

 

"저녁 뭐 먹어?"

 

"생선."

 

"무슨 생선?"

 

"몰라."

"루틴이 싫어하는 거구나."

"어떻게 알았어?

"넌 대답이 귀찮거나 진짜 모르거나, 알고 있는데 답하기 싫은거면 다 몰라라고 답하니까. 그냥 찍은거야."

 

"너 진짜 귀찮아."

 

점심시간, 그네에세 꼭 루틴을 기다리던 서진이 오늘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늘 있던 서진이 없음에 허전함을 느끼던 루틴이 결국 서진을 찾아 나섰습니다. 고아원을 빙 돌던 루틴에게 갑자기 익숙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골목길로 들어가니 바지가 벗겨진 서진이 흙투성이로 남자아이들에게 팔다리를 잡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서진은 울부짖으며 그만하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비웃는 얼굴로 서진의 다리를 우악스럽게 벌리려고 합니다. 루틴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이 한 남자에게 눈깜짝할 새 달려들었습니다. 루틴은 한 남자애를 넘어뜨리는 데에는 성공 했지만, 서진을 둘러싼 아이들은 꽤나 덩치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질이 나쁘다고 아이들이 슬슬 피해다니는 '놈'이라는 남자아이였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진짜로 남자아이들을 강간하고 다니는 미친 '놈'이라는 사실을 루틴은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히죽 웃는 그의 미소는 만사에 덤덤한 루틴이라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질적인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듯 합니다. 그 녀석이 이런 짓을 저지른 선동자라고 생각한 루틴은 재빠르게 웃고 있는 놈에게 달려들어 악을 지릅니다.

 

"서진은 내꺼야! 너 같은 놈이 가질 자격 없으니 당장 놔줘!"

 

"너, 그 동굴에서 뭐 봤어?"

 

놈이 웃으며 루틴의 손목을 잡습니다. 처음부터 루틴이 올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놈의 입꼬리가 히죽 찢어집니다. 

 

"어서 대답해. 그 동굴에서 무슨 짓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