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y 2019. 4. 27. 18:40

모든 건 내가 7살 때 시작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등산을 좋아하셨고, 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도 등산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경치가 좋은 곳을 귀신같이 잘 아셨고 나는 그런 할머니가 또 좋았다.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같이 등산을 했던 때에 할머니가 가만히 건너편 큰 산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아름이야.'

'왜?'

'혹시 저 산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니.'

'아니... 저 산 뭔가 무서워..'

'왜?'

'아니...그냐앙...'

 

말끝을 흐리던 나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시며 그녀 특유의 눈웃음을 짓고 같이 하산했던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 그리고 10년 후인 나는, 또 할머니 집 앞에 서 있었다.

 

"아이고오오~"

 

"엄마! 우리 엄마... 이렇게 말도 없이... 흐어어엉~"

 

마을 내 인자하기로 소문났던 우리 할머니 집에는 곡소리만 가득했다. 전에는 추석 전 냄새와 고양이를 쫓는 할머니 집 개 누렁이 짖는 소리만 났는데. 그리고 명절 때마다 내려오면 반겨주시던 할머니 얼굴. 눈웃음. 그중 아무것도 들리고, 보이지 않았다. 

 

"아름아."

"으응."

"마지막 인사, 드리고 와야지."

"갈 거야.."

 

불과 세 시간 전에는 학교에서 그냥 돈가스 먹을 생각에 신나 있었는데, 왜 지금 나는 교복을 벗고 검은 옷을 입고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에 나는 먹을 생각에 신나기만 했던 걸까. 할머니는 마지막에 내 생각을 하시긴 하셨을까.

 

"할머니.."

 

검은 리본이 달린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

 

그 영정 사진 앞에 서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머니가 하늘로 가셔도 나를 기억하실 텐데. 입술만 우물거리는 나를 결국 아빠가 손을 잡고 그 사진 앞에서 나를 빼냈다.

 

"시간이 필요한 거니."

 

아빠가 쓰던 안경을 올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그 힘들어 보이는 말투에는 한숨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서 구석으로 어기적 걸어갔다. 구석에 가만히 있다 보니 장례식 하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훤하게 보인다. 슬퍼하고, 아파하고, 어떤 사람은 시끄러워하고, 아무런 감정 없지만 얼굴만 비추고 가려는 사람, 그리고... 웃는 사람...? 헛것이 아니었다. 마루 쪽 회색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잠깐 멈칫하고 내가 쭈그려 앉은 구석 쪽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그 년의 손녀구나."

 

그 년..? 설마... 우리 할머니?

벌떡 일어나 그의 눈을 보며 쌍욕을 뱉으려고 했다. 어디서, 거지같이 생긴 게 입을 막 놀려! 

 

"왜, 화가 나?"

 

그 남자는 능글맞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밉살스럽게 굴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눈을 깜빡거리다가 아빠의 소매를 턱 잡았다.

 

"아빠, 이상한 사람 들어왔어."

 

"어디."

 

아빠는 중얼거리듯 대답하며 눈으로 내가 가리키는 마루 쪽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발걸음이 늦어 이제 막 들어오시기 시작한 건너편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계셨다. 

 

"... 갔니?"

 

"그런가 봐.."

 

얼떨떨한 기분 다음으로 오는 것은 짜증이었다. 무슨, 사람 놀리는 건지. 분명히 날 놀리려고 아빠를 부를 때 잽싸게 튄 거야.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나갔다. 설마 아직 있나 싶어서. 찾으면? 찾으면 뭐하게? 쌍욕을 뱉어줄까?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뱉는 욕으로 당황스러워하며 도망가는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집을 빙 돌며 회색 후드티를 찾으려고 했다. 소리를 지르면 뭔가... 아빠가 싫어하실 것 같아서.

 

"나 찾아?"

 

뒤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밉살스러운 목소리.

 

"이 씨빠!"

 

깜짝 놀라 욕을 뱉으며 그대로 앞으로 휘청거렸다. 넘어지면 안 돼, 진짜 안돼.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짜증나는 사람 앞에서 넘어지면 진짜 최악이야.

버둥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는 그때 등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

툭.

비틀거리던 몸이 아예 무너지며 검은 옷은 누런 갈색 옷이 되어버렸다. 땅바닥에서 바르작거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고 땅바닥만 보는 나를 보고 뒤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웃기는 년들이라니까 진짜. 나중에 산에서 또 보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나를 두고 그 새끼는 떠났다. 인기척이 없으니 없는 거겠지. 그 놈 앞에서 울면 더 꼴 사나웠을 테니까. 웃긴 자세긴 하지만 다행이다. 훌쩍이며 일어나 엉망이 된 얼굴을 좀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눈 앞에 그 자식의 얼굴이 갑자기 쑥 나타났다. 

 

"간 줄 알았지!!!"

 

"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그 녀석의 뺨을 갈겨버리고 짜증과 서러움이 섞인 울분을 터뜨리며 도망가버렸다. 왜 나는 하필 저 사람을 만나서 저 사람을 따라가고 이 꼴을 당한 걸까. 진짜 꿈 아니야?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을 힘껏 때렸는데 괜찮을까?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씨바ㅏ아ㅏ아!!"